이해인 시 모음 비오는 날의 일기 외 비에 관한 시 3편 모음
비 오는 날의 일기
이해인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 세상 어디든지
한 방울의 기쁨으로
한 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 비, 고운 비
맑은 비가 되자
비 오는 날의 기도
양광모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게 하소서
천둥과 번개 소리가 아니라
영혼과 양심의 소리에
떨게 하시고
메마르고 가문 곳에도
주저 없이 내려
그 땅에 꽃과 열매를
풍요로이 맺게 하소서
언제나 생명을 피워내는
봄비처럼 살게 하시고
누구에게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단비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이 세상 떠나는 날
하늘 높이 무지개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담담하게 살아 갈수 있는 힘을 주시길 기도해봅니다.
더 많이 베풀고, 나누며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죽이는 말이 아닌, 생명을 피우는 말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병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덫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비가 올 때 창밖을 바라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감성에 젖게 되고,
그럴 때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은 추억을 생각하며 읽는 시입니다.